이 글에는 낙화암의 전설이 내려오는 '부여 부소산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낙화암의 전설 : 부여 부소산성
백제의 마지막 도읍
부소산성은 부여의 부소산에 있는 산성이에요.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부소 산 기슭 백마강변에 성을 쌓고 사비성이라 불렀어요. 사비는 백제가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123 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고, 부소산성은 그 도읍을 방어하는 산성이에요. 현재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어요.
테뫼식과 포곡식의 복합 산성
부소산성은 높이가 해발 100미터 정도의 야트막한 산성이에요. 산정상은 테뫼식 산성, 그 주변은 포곡식 산성으로 쌓은 복합산성이지요.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 이 되도록 마치 산에 테를 두르듯 성을 쌓은 것이며, 포곡식 산성은 골짜기를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은 것이에요.
왕과 귀족들의 소풍 장소
부소산성의 성 안에는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 터와 건물 터들이 남아 있어요. 이로 미루어 볼 때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 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 을 구경하기 위해 왕과 귀족들이 소풍이나 산책을 오던 장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해요.
세 명의 충신을 모신 삼충사
부소산성 안에는 백제 말의 충신인 성충 · 흥수 · 계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삼충사가 있어요. 계백은 660년 신라군과의 황산벌 전투를 지휘하다가 전사한 백제의 영웅이에요. 성충과 홍수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던 백제의 의자왕에게 이제 그만 사치를 멈추고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라고 이야기했던 인물이에요. 하지만, 화가 난 의자왕은 성충을 감옥에 가두고, 홍수는 귀양을 보내 버렸지요.
3년씩 젊어지는 샘물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하는 절이에요. 절의 뒤편에는 고란정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백제의 왕들이 마신 물로 그 물을 한 번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요. 절 뒤 바위틈에 고란초라는 풀이 자라는데, 신라의 원효 대사가 백마강 하류에서 강물을 마시고는 그 물맛으로 상류에 고란초가 있음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궁녀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백화정
낙화암은 백제가 멸망할 당시 사비성에 있던 궁녀들이 백마강 절벽에서 적군에게 쫓겨 왕을 모시던 3,000명의 궁녀들이 절벽의 바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 져 죽음을 맞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에요. 낙화 암 꼭대기에 세워진 육각형의 백화정은 이때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세운 정자랍니다.
삼천궁녀 이야기의 진실
낙화암의 전설은 과연 사실일까요? 《삼국유사》에는 '부여성의 북 쪽 귀퉁이에 큰 바위가 있고 밑으로 강이 흐른다. 바위에서 궁녀와 귀부인들이 뛰어내려 죽었다 하여 타사암이라고 부른다.'는 기록 이 전해요. 이 기록에서 궁녀를 꽃에 비유하여 훗날 사람들이 궁녀 들이 떨어진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부른 것이고요. 그러나 삼천궁녀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민제인이 지은 시 <백마강부>에서 '궁녀 수 삼천'이라고 했을 뿐 역사적인 어느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아요. 또한, 당시 백제의 국력으로 보았을 때, 궁궐 안에 3,000명 이나 되는 궁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 야기라고 짐작하지요.
위와 같이 낙화함의 전설이 내려오는 '부여 부소산성'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