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가야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김해 수로왕릉'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역사 : 김해 수로왕릉
여섯 가야의 우두머리 가락국
낙동강 유역의 변한 땅에 가야라고 불리는 작은 나라 여러 개가 생겨 연맹 국가가 되었어요. 연맹 국가란 작은 나라 여럿이 한 나라처럼 서로 돕고 행동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것을 말하지요. 가야 연맹은 여섯 나라가 금관가야라고도 불리는 가락국을 중심으로 모였어요. 가야의 건국 설화에 따르면 42년 김수로왕이 지역의 9명 부족장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해요.
풍부한 철이 유명
'철의 나라'라고 불린 가야에는 철이 풍부했어요. 일반 백성들도 철로 만든 도구를 쓸 정도였지요. 수로왕이 세운 가락국의 중심이 지금의 김해 지방인데, 김해(金 海)를 풀이하면 쇠 김(金), 바다 해(海), 즉 '쇠의 바다' 라는 뜻이에요. 금관가야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 부한 철을 중국과 왜에 수출하여 큰 번영을 누렸어요.
수로왕릉
역사 기록에 따르면 수로왕은 199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그 뒤에 지름 22미터, 높이 6미 터의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수로왕릉이 만들 어졌는데, 정확히 무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조선 선조 13년(1580)에 영 남관찰사 허엽이 지금의 모습으로 능을 단장했다고 해요. 수로왕릉은 납 릉(納陵)이라고도 부른 답니다.
금관가야 왕비의 무덤
수로왕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의 무덤이 있어요. 허황옥은 아유타국 (인도)의 공주였어요. 어느 날 아유타국의 왕은 공주를 가락국왕 수로의 배필로 삼게 하라는 꿈을 꾸고 자신의 딸을 가락국으로 보냈어요. 공주가 가락국에 도착하자 수로왕 또한 공주가 올 줄 알 고 있었다며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들였다고 해요. 허황옥의 무덤 앞 작은 건물 안에는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올 때 파도를 잠재 우기 위해 배에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의 일부가 남아 있어요.
결국 신라에 통합되다.
가야 땅에는 원래 마한,진한, 변한이라는 나라 가 있었어요.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불렀는 데, 그중 변한은 철이 발달한 나라였어요. "변한 에서는 물건을 사고팔 때 철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지요. 가야는 변한의 뒤를 이 어 철을 다루는 기술을 발달시키며 성장했어요. 낙동강 입구로부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내륙 각지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해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여섯 가야를 한 나라로 통일하지 못해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안타깝게도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562 년 신라에 통합되고 말지요.
금관가야의 후손들
신라에 통합된 뒤 가야는 발달된 농업 기술과 철기 문화를 신라에 전해 주며, 신라가 삼국 통 일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어요. 삼국 통일 의 일등공신인 김유신은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12대 후손이며,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곡을 지은 음악가 우륵도 가야 출신 인물이지요.
구지가(龜旨歌)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가사가 참 재미있지요? 가야의 건국 설화에 따르면 9명의 부족장이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왔다고 해요. 그 금궤 속에는 여섯 개의 황금 알이 들어 있었는데, 12일 후에 알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이 바로 가야를 세운 수로왕이지요. 이 노래를 <구지가〉라고 해요.
위와 같이 가야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김해 수로왕릉'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