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의 유적 '서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례성 :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풍납토성-몽촌토성
풍납토성, 몽촌토성

백제를 세운 온조

고구려를 세운 주몽에게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인 유리가 나타나 태자의 자리에 오르자, 비류와 온조는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어요. 비류는 바닷가인 미추홀에 자리를 잡고, 온조는 한강유역의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라 지었지요. 이후 비류가 죽자 비류의 백성들까지 모두 온조에게 합류했어요. 나날이 백성이 따른다 하여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어요.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있던 곳

기원전 18년, 백제가 처음으로 수도로 삼은 위례성은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475년 공주로 도읍지를 옮길 때까지 무려 493년 동안이나 백제의 수도였지요. 위례성은 현재의 어디일까요? 풍납동토성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는 위례성을 경기도 하남시 춘궁리 일대나 몽촌토성 중의 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현재 역사 학자들은 풍납동 토성을 백제의 왕궁이 있던 위례성으로 짐작해요. 몽촌토성보다 발굴된 유물의 수와 종류도 많고, 지형적으로도 풍납동 토성이 적당하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백제의 왕궁이 있던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넓이가 무려 84만 제곱미터에 달해요. 이곳에 초기 백제의 왕궁과 왕실, 조상을 모신 시조묘, 관청, 지배층의 저택, 주민들의 집들이 건설되었을 것으로 짐작해요. 성 안에는 사방으로 도로가 만들어졌으며 마차가 다니는 도로도 있었음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풍납토성은 왕이 살던 성으로, 몽촌토성은 비상시에 왕이 거주하던 산성으로 짐작해요.

 

큰 규모를 자랑했던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홍수와 도시 개발로 인해 많이 사라져 지금은 비록 작은 언덕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전체 길이 3,470미터, 높이는 약 9~13미터 정도의 큰 규모를 자랑했어요.약 아파트 5층 정도의 높이인 셈이지요. 이 정도 성을 쌓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흙이 필요한데, 8톤 트럭으로 20만 대 가 필요하다고 해요. 또한 성을 만들기 위해 연간 약 138만 명 이상의 인원이 투입되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어요. 그만큼 백제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는 나라였음 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자연 지형을 이용해 쌓은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길이 약 2.7킬로미터로 백제가 국가를 형성하는 시기인 3~4세기 사이에 쌓은 것으로 짐작해요.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구릉지의 지형을 이용해 외성과 내성의 이중 구조로 쌓은 독특한 성이에요. 몽촌토성은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들고 북쪽으로 목책을 세웠으며, 그 외곽에 해자를 둘렀어요. 해자란성의 밖으로 물길을 내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으로 현재는 연못으로 꾸며져 있어요. 야트막한 동산에 연못과 산책로가 이어져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이 글은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의 유적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대 해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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