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조와 수원화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

 

수원화성-팔달문
수원화성 팔달문(출처:수원관광)

화성 행궁과 성곽을 짓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서 옛 수원의 뒷산인 화성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아버지 무덤인 화성으로 자주 행차를 했지요. 화성에 임금이 자주 행차하자 행궁을 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성곽을 쌓아 1796년 완성한 것이 지금의 수원화성이에요.

화성을 중심으로 새 정치를 꿈꿀 정조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지은 속뜻은 끊임없는 당파싸움 속에서 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곳에서 정치를 펴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기존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던 수도 한양을 떠나 새 도시를 건설하고 그 곳에서 새 정치를 펼치고자 한 것이지요. 그런 계획에 따라 건설한 도시가 바로 수원화성이고요.

 

34개월 만에 완성하다.

정조는 화성을 쌓는 공사에 참여한 모든 일꾼들에게 일한 만큼의 임금을 주게 했어요. 일을 하다가 다친 사람에게도 치료와 함께 일당의 반을 보수로 주었지요. 또한 정조는 아프고 힘든 일꾼들에게 내의원에서 약을 지어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어요. 겨울에는 털모자를 구해 일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당시 털모자는 정 3품 이상의 벼슬을 지닌 인물들만 쓸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어요. 이처럼 정조의 배려에 일꾼들은 온 힘을 다해 화성을 쌓았고, 10년 정도 걸려야 완공될 수원화성이 34개월 만에 완성될 수 있었어요.

 

수원화성의 여러 문들

화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4개의 성문이 있어요. 서울을 향한 북문인 장안문, 남문인 팔달문, 동쪽의 창룡문과 서쪽의 화서문이 있어요. 이 가운데 장안문과 팔달문은 수원화성을 대표하는 건물이에요. 그리고 성곽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는 암문이 있어요. 화성에는 북암문, 동암문, 서암문, 서 남암문, 남암문 등 5개의 암문이 있지요. 또한 화성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개천과 성벽이 만나는 곳의 북쪽과 남쪽에 수문이 설치되어 있어요.

 

화성에 대한 모든 것 :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 공사의 모든 것을 기록한 책이에요. 공사와 관련된 경비, 인력, 물자, 기기, 건축물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이 책을 보고 수원화성을 복원할 수 있었지요.

 

세계 문화유산이 되다!

수원화성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 한 모습의 성곽이에요. 군사적인 기능과 상업적인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지요. 또한 동양과 서양의 군사시설 이론을 조화시켜 방어 기능이 매우 뛰어나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수원 화성을 만들 때 이용한 기구

거중기는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기구예요. 좌우에서 남자 30명이 7.2톤의 무게까지 들어 올릴 수 있었대요. 유형거는 기존의 수레가 바큇살이 약해 부러지기 쉽고, 돌을 싣기 어렵다는 점을 보완하여 만든 거예요. 두 기구 모두 정약용이 고안한 것이지요. 녹로는 고정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구예요.

 

위와 같이 정조의 꿈을 품은 '수원화성'과 관련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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