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신라의 역사가 시작된 '경주 오릉'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주 오릉

 

경주-오릉
경주 오릉

알에서 태어난 아이

원래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어요. 여섯 마을의 부족장들은 왕이 없어서 걱정이었지요. 어느 날, 나정이라는 우물 옆에서 흰 말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부족장들이 찾아가 보니 알이 하나 놓여 있었어요.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박 같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은 '박'이라 하고 밝은 세상이라는 뜻 의 '혁거세'라 이름을 붙였어요. 그 아이가 바로 여섯 부족장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라 기원전 57년 신 라를 세운 '박혁거세'랍니다.

 

우물에서 태어난 왕비

오릉 근처의 대나무 숲속에는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이 태어난 곳이라고 전하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이 있어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 해지고 있지요. 기원전 53년 알영정가에 나타난 용이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어요. 이를 본 한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다 길렀는데, 우물의 이름을 따 이름을 '알영'이라 붙였지요. 그런데 아이의 입술 이 닭의 부리처럼 생긴 게 아니겠어요? 할머니가 월 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가 아이를 목욕시키자 그제야 부리가 떨어졌다고 해요. 이 아이가 자라서 박혁거세의 왕비가 되었답니다.

 

뱀의 방해로 오름이 되다.

경주 남산의 서북쪽에 다섯 개의 야트막한 봉우리가 있는데, 바로 다섯 개의 무덤인 오릉(五陵)이지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오릉의 유래는 다음과 같아요. 혁거세 왕이 임금 자리에 있은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후 죽은 육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어요. 혁거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함께 묻어 주려 했으나 어디선가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며 방해를 했어요. 결국 어쩔 수 없이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어 오릉이 되었다고 해요. 뱀 때문에 무덤이 여러 개 생겼다 해서 사릉(蛇陵)이라고도 하지요.

 

오릉의 또 다른 유래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은 위와 달리, 오릉이 신라 초기의 왕인 제1대 임금 박혁거세, 제2대 남해왕, 제 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과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의 무덤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어떤 기록이 맞는지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 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때의 무덤 형식은 아니라고 해요.

 

오릉 자세히 살펴보기

가장 남쪽에 있는 제1릉은 높이 약 10미터로, 5기 가 운데 가장 높고 큰 원형봉토분이에요. 제1의 동북 쪽에 위치한 제2 릉은 표주박 형태의 무덤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며, 제3 릉은 제2의 동쪽에 있는 무덤으로, 높이는 약 7.2미터예요. 제4 릉은 제2 릉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3.6미터이고, 제4 릉의 동쪽에 위치한 제5 릉의 높이는 약 1.8미터이지요.

 

오름이 아니라 육릉?

오릉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다섯 개가 아닌 여섯 개 의 봉분이 있어요. 그런데 왜 육릉이 아닌 오릉이라 할까요? 다른 4기의 무덤과는 달리 제3이 표주박 형태의 2인용 무덤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오릉에 실제로 묻힌 사람은 여섯 명이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신라 탄생과 관련된 다른 유적지

경주에는 신라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이 있어요. 오릉의 남쪽에는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덕 전이 있어요. 조선 세종 11년(1429)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려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었고, 숙종 20년(1694)에 수리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지요. 나정 옆에는 양산재라는 건물이 있는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여섯 마을의 대표자 즉, 촌 장들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에요. 경주 남산에 있는 창림사 터는 신라의 여섯 부족장들이 박혁거세와 그의 배우자인 알영을 데려다 기른 궁궐이 있던 곳이었다고 전해져요.

 

무덤을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

무덤 속 사람의 신분에 따라 무덤을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왕과 왕비가 묻힌 무덤을 능(陵),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비, 왕의 생모와 생부가 묻힌 무덤을 원(園), 그 밖의 무덤은 묘(墓)라고 부르지요. 무덤의 규모나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무덤의 주인이 왕 또는 왕비라는 짐작은 가지만 정확하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무덤에는 '총'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천마총, 금관총처럼 그 무 덤의 특징이나 출토된 유물의 특성을 살려 그 무덤의 이름을 정했어요. 무덤의 주인공의 신분을 짐작하기 어렵고, 보편적인 유물만 출토된 무덤은 고분 또는 분(墳)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무덤이 위치한 마을에 번호를 붙여서 이름을 지어요. 안악 3호분, 송산리 6호분처럼 말이에요

 

 

 

위와 같이 신라의 역사가 시작된 '경주 오릉'과 관련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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