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서울 독립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 독립문
국민들의 모금으로 세운 문
독립문은 1896년 독립 협회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마련한 돈으로 세운 문이에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들었다고 해요. 독립문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문이지요.
독립 협회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예요. 독립 협회의 목표는 국민을 계몽시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독립신문'을 만들었어요. 또한 '만민 공동회'라는 토론회와 연설회를 열어 러시아의 간섭을 비판했어요. 고종에게 일본인에게 기대지 말 것, 외국과의 이권 계약에 신중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헌의 6조'를 올리기도 했어요.
파리의 개선문을 닮았어!
독립문의 모양이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고요? 맞아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꼭 닮았어요. 서재필이 개선문을 보고 스케치한 것을 갖고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한 것이에요. 독립문과 개선 문은 겉모습이 닮기도 했지만, 각 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담은 상징 물이라는 공통점도 있어요.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가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에요.
독립문 자세히 보기
1896년 지어지기 시작한 독립문은 만 1년 후인 1897년 11월에 완공되었어요. 높이 14.28미터, 너비 11.48미터, 두께 6.25미터의 직육면체인데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꼭대기에는 네 귀에 있는 탑 모양의 사각기둥을 연결하는 난간이 있어요. 홍예문 왼편 안쪽으로는 옥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어요.
독립문을 짓고 '독립신문'을 만든 서재필
1884년 서재필은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을 없애고 근대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어요. 하지만 이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서재필은 10여 년간 미국에서 홀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95년 12월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이승만, 이상재, 윤치호 등과 독립 협회를 조직했어요. 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 여러 일들을 벌이다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3·1운동 때 미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상하이 임시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독립문은 반일? 반청!
독립문이 원래 들어선 위치는 영은문이 있던 자리예요. 영은문은 중국 청나라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모화관 앞에 세운 것으로 그 이름은 은혜를 베푼 나라의 사신을 맞이한다는 뜻이지요.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문을 헐고 지었으니 더 이상 청나라 속국이 아니라 자주 독립국임을 나타나기 위해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본에 반대하여 세운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 반대하여 세운 것이지요.
독립문 현판을 이완용이 썼다고?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대한 제국 황실을 상징 하는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문의 앞면과 뒷면 이맛돌의 바로 위 현판석에는 각각 '독립문'과 '獨立門'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그 좌우에 태극기 무늬를 새겨 넣었어요. 그런데 독립문이라는 글자는 이완용이 쓴 것이라고 해요. 당시 이완용은 제2대 독립 협회 의원장까지 지냈지만, 나중에는 친일파가 되어 을사오적 중 한 사람으로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지요.
위와 같이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독립문'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