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전주 경기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주 경기전
임금님의 초상화 어진
어진이란 임금님의 초상화를 말해요. 초상화는 특정한 인물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해요. 초상화는 어떤 인물을 쏙 빼닮게 그려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어서 뛰어난 실력이 있어야만 했어요. 특히 왕의 초상화는 당시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경험 많은 화원이 그렸지요.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 지내던 건물을 진전이라고 해요. 조선 시대에는 궁궐은 물론 강화도 등 여러 곳에 진전을 지어 어진을 보관하였지요.
얼굴을 알 수 있는 왕은 고작 5명
진을 통해 조선 시대 왕들의 생김새를 알 수 있겠다고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해요. 임진왜란 때 많은 어진이 불에 타 사라졌고, 창덕궁에 남아있던 열두명 임금의 어진 46점도 한국 전쟁 때 부산으로 옮겼다가 1954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어진은 7점뿐이에요. 태조 어진, 영조 어진, 왕위에 오르기 전 젊은 시절 영조의 어진, 철종 어진, 그림이 반 이상 타 버려서 얼굴을 알 수 없는 익종의 어진, 그리고 고종과 순종의 어진만 남았지요. 그러니 어진을 통해 얼굴을 알 수 있는 조선시대 왕은 고작 5명인 셈이지요.
태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경기전
전주 한옥 마을의 입구에 있는 경기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에요.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아버지인 태조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전주, 경주, 평양에 건물을 짓고 이 건물들을 어용전이라고 불렀지요. 이 어용전을 세종 24년 (1442)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승전이라 각각 다르게 이름 붙였어요.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에 중건되었지요.
어진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
경기전 안에는 어진을 보관 · 전시하는 어진 박물관이 있어요. 태조 어진 진본을 비롯하여 영조 · 철종 ·고종 · 순종 어진 모사본과 세종과 정조의 표준 영정이 있어요.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도 있어요. 사고란 역대의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은 창고를 말해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
처음에는 서울 춘추관과 충주의 사고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는데, 1445년(세종 27년)에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설치하여 모두 네 곳에 실록을 보관함으로써 손실의 위험에 대비했어요. 이렇게 정비되어 내려 온 4 사고는 임진왜란 때 화재를 입어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가 불타 버리고 전주 사고에 있던 책들만 보존되었지요. 그 뒤 실록은 새로 인쇄되어 내사고인 춘추관을 비롯하여 외사고인 강화 · 묘향산 · 태백산· 오대산의 5 사고에 보관되었고요.
전주 사고의 실록을 지킨 사람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전주를 목표로 침입하 자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태조의 어진과 사고의 실록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했어요. 하지만 13대 임금의 실록 총 805권 614 책 및 기타 전적 등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말 20여 필과 많은 인부들이 필요했지요. 오희길은 손홍록이라는 선비의 도움을 받아 정읍의 내장산 깊은 동굴에서 태조의 어진과 사고의 실록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어요. 당시 서울, 충주, 성주의 사고는 전쟁 중에 모두 소실되었지만, 전주 사고에 보관되었던 역대 실록과 《고려사》 등의 전적은 무사히 보존되었지요.
조선 시대의 백과사전
《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을 세운 태조부터 제25대 철종까 지 472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책이에요. 임금에 관한 내용은 물론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산업, 문화, 종교 등 그 시대에 벌어진 일들이 담겨 있어 마치 백과사전과도 같아요. 특히 임금도 함부로 실록을 볼 수 없도록 원칙을 정해 놓아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였지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답니다.
위와 같이 조선시대 왕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전주 경기전'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