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서 오죽헌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는 강릉시에 있는 오죽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과 이이가 태어난 집
오죽헌은 조선 최고의 어머니로 불리는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에요. 본래 이곳은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최응현의 집이었어요. 이 중 몽룡실은 사임당이 33세에 셋째 아들 이이 선생을 출산한 곳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민가 건축물로 알려져 있어요.
용꿈을 꾸고 낳은 이이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꾼 꿈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에요. 신사임당은 바다에서 솟아 오른 검은 용이 침실로 들어와 아이를 안겨 주는 꿈을 꾼 뒤 이이를 낳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이를 낳은 방을 '몽룡실'이라고 불렀고, 이이의 어릴 적 이름을 '현룡'이라 불렀어요. 이이는 여섯 살 때까지 오죽헌에서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검은 대나무가 자라서 오죽헌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씨는 딸만 다섯 낳았는데 사임당은 그중 둘째 딸이에요. 집을 물려받은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었어요. 그리고 집주인의 호가 언제부턴가 집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기념관의 멋진 작품
오죽헌에는 문성사, 사랑채, 어제각, 율곡 기념관, 강릉 시립 박물관 등이 있어요. 문성사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율곡이 어린 시절에 사용했던 벼루(용연)를 보관하는 곳, 율곡 기념관에는 율곡의 유품은 물론 신사임당의 글과 그림, 사임당의 큰딸 매창 등 사임당 일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벼루와 '격몽요결'을 보관하라
788년 정조 임금은 이이가 쓴 《격몽요결》과 이이가 어릴 때 사용하던 벼루가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궐로 올리라 명했어요. 《격몽요결》을 읽은 후 크게 감명받은 정조는 이이가 사용하던 벼 루의 뒷면에 이이를 칭송하는 내용을 친필로 썼어요. 그리고 다시 오죽헌으로 돌려보내 강원도 관찰사에게 건물을 지어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도록 했어요. 어명에 의하여 건립되었기 때문에 어제각(御製閣)이라 불렀지요.
조선시대의 초등 교과서
《격몽요결》은 1577년(선조 10)에 율곡 이이가 펴 낸 책으로 청소년 자제들의 독서·궁리와 학문 생활 및 일상생활의 윤리 등에 관하여 자세히 분류하여 가르치고자 한 일종의 초등교과서예요. 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천자문》, 《동몽선습》, 《훈몽자회》에 이어 널리 읽혔어요.
신사임당의 '초충도'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초충도〉예요.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여러 가지 꽃을 피우는 식물과 개구리나 도마 뱀, 쥐 같은 동물들이 함께 그려지기도 해요.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8폭짜리 작은 병풍에 그려진 그림으로 '수박과 들쥐', '가지와 방아깨비', '오이와 개구리', '양귀비와 도마뱀',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원추리와 개구리', '어 이와 개구리', '여뀌와 사마귀' 등의 소재로 구성되어 있어요. 간결하고 안정된 구도 속에 섬세하고도 세련된 표현과 선명하고 고운 색채로 그려 낸 신사임당의 그림을 보고, 숙종 임금은 똑같이 그리게 하여 병풍을 만들었을 정도로 높이 평가했어요.
위와 같이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하 태어난 강릉 '오죽헌'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