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고려 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만월대'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역사 속의 만월대를 본문에서 확인하세요!
목차
만월대
왕건, 송악에 도읍을 정하다.
877년 송악산 남쪽 기슭에서 태어난 왕건은 자라서 송악지역의 세력가가 되었고, 궁예의 부하가 되어 궁예가 901년에 후고구려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어요. 이후 궁예가 난폭해져 백성들의 인심을 잃자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되어 새나라를 세웠어요. 나라 이름을 고려라 짓고, 도읍지를 자신의 고향인 송악으로 옮겨 그곳에 멋진 궁궐을 지었지요. 그 뒤로 송악은 개경이라 불리다가 고려가 멸망한 뒤 개성이라고 불렀어요.
고려 왕조의 또 다른 궁궐 수창궁
수창궁은 고려 시대에 개성의 도성 안에 있던 별궁이에요. 특별히 따로 지은 궁궐이란 말이지요. 몽골의 침입 때 불탔다가 고려 공민왕 때 다시 짓기 시작해 1384년에 완성했는데 고려 공양왕과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즉위했어요.
고려 왕조 권위의 상징 만월대
919년 왕건은 고려의 도읍지를 송악산 기슭으로 정하고 그곳에 궁궐 만월대를 지었어요. 일반적으로 궁궐은 평지에 짓지만, 고려 궁궐은 산의 지세에 따라 돌을 다듬어서 층계를 만들어 그 위에 궁을 세웠어요. 많은 건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했는데, 궁궐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지요. 특히 임금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정전인 회경전은 다른 건물보다 50미터 높은 곳에 세웠어요. 하지만 1361년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버린 뒤 현재 만월대는 그 터와 계단만 남아 있어요.
고구려를 계승하는 황제의 나라
만월대는 왕의 궁전이 있던 궁성과 중앙 관청들이 있던 황성으로, 만월대의 전체 넓이는 125만 제곱미터 이며, 궁성의 넓이는 약 39만 제곱미터예요. 고려는 일찍이 궁궐을 왕의 궁이 아니라 황제의 궁이라 불렀어요. 즉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황제의 나라라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왕궁이 아니라 황궁, 왕도가 아니라 황도라 불렀답니다.
고려 궁궐의 정식 이름이 없다?
만월대라는 이름은 원래 달을 바라보는 건물인 망월대를 가리켰어요. 망월대가 만월대로 불리다가 후세 사람들에 의해 고려 궁궐 전체를 이르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만월대 말고 고려 궁궐의 정식 이름은 무엇일까요? 조선 왕조의 경복궁이라는 이름처럼 말이에요. 연경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연경궁은 별궁 중 하나이며, 고려 궁궐은 따로 이름 없이 그저 본궐로 불렀던 것으로 추측해요.
고려 궁성의 정문 이름도 광화문!
동서 445 미터, 남북 150미터의 대지에 위치한 왕궁 터의 가운데에는 회경전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이 있었으며, 궁성 주위에는 13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 문인 광화문이 정문 구실을 했어요. 경복궁의 남쪽 문이자 정문인 광화문과 이름이 같다고요? 고려 궁궐의 광화문은 광화문(廣化門), 경복궁의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이니, 다르지요!
강화에도 고려의 궁궐이 있었다고?
1206년 몽골의 군사들은 중국 대륙은 물론 세계정복에 나섰어요. 1231년에는 고려까지 공격해 왔지요. 이에 고려는 1232년(고종 19년) 때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그곳에 궁궐을 지었어요.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모습은 원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불렀다고 해요. 39년 동안 사용되었지만, 1270년(원종 11)에 다시 수도를 송도로 옮기면서 허물어져 지금은 그 터만 남았어요. 강화 고려궁지는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답니다.
위와 같이 고려 왕조의 역사를 담고있는 북한 개성에 있는 만월대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