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창경궁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창경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본문에서 확인하세요.

 

목차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전경

    창덕궁과 연결된 궁

    창경궁은 원래 세종이 아버지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 있던 곳이지요.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했어요.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 공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 것이에요.

     

    궁중의 어른들을 모시는 창경궁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에게는 모셔야 할 어른들이 많았어요. 할머니 정희왕후와 작은어머니 안순왕후, 그리고 친어머니 소혜왕후 등 세 명의 대비가 있었지요. 이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 1484년, 창덕궁 옆에 있던 수강궁에 새로 이 궁궐을 지은 것이 창경궁이에요.

     

    인종이 즉위한 명정전

    창경궁의 명정전은 왕이 신하들의 하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했어요.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졌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었어요.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궁궐의 전각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지요.

     

    장희빈이 죽음을 맞이한 취선당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은 장희빈을 총애하여 창경궁 안에 취선당이라는 전각을 지어 주었어요. 장희빈이 취선당에서 왕자를 낳자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맞이했어요. 하지만 이후 장희빈이 잘못을 저지르자 왕비의 자리에서 내쫓고, 취선당에서 지내던 장희빈은 1701 년에 사약을 받아 죽고 말지요.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탄생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는 아들인 사도 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 세력이 세자가 성품이 좋지 않으며, 궐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닌다고 이간질을 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영조는 1762년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 앞뜰에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어요. 뒤주란 곡식을 담아 두는 상자예요. 그 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8일 동안 버티던 세자는 죽고 말았지요.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창경궁의 침전인 경춘전에서 태어났고요.

     

    창경궁을 유원지로 바꾼 일본

    일제는 고종을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순종을 황제로 앉히고는,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웠어요.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궁궐이 동물원이 되면 조선의 주권과 권위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에요. 이후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불리며 유원지로 변하고 말았죠. 사람들은 동물들의 재롱을 보고 놀이 시설을 이용하며 그곳이 조선 왕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궁궐임을 잊었어요. 다행히 1983년부터 '창경궁 복원 계획'이 진행되어 동물원과 놀이 시설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식물원의 온실만 그대로 남아 있지요.

     

    풍기대

    창경궁에는 영조 8년(1732)에 만든 것으로 짐작하는 풍기대가 있어요. 풍기대란 받침돌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것이에요. 경복궁에도 남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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